내가 살고 있는 호주 !
구글 검색으로 찾아본 호주크기는 무려 7,692,000km2
무려 남한의 77배 면적 .................
오세아니아에서 1번째, 세계 6번째 면적이 넓은 나라 !
이렇게 크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리는 없고.......
그런데 또 비교적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외딴 섬이다보니
발견을 쉽게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 ...???
이 크고 넓은 대륙을
제일 처음 누가 발견했을까요?!
호주는
1542년 포르투갈인에게 제일 먼저 발견이되었지만 표시만 해뒀을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유럽국가들의 '대항해시대'라고 말하는 1600년대 초
네덜란드인 빌럼 얀스라는 사람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지만
호주 북쪽의 케이프 요크(Cape York)에 상륙한 그는
원주민들의 공격과, 북부호주의 거친 땅에 실망하였고
그냥 돌아가게됩니다.
그 이후 1616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하르토흐라는 사람이
호주의 북쪽과 서쪽 일부를 발견후 탐험한 후
뉴홀란드 (New holland)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붙여놓은 채 다시 떠났습니다
( 떠나는 길에 지금의 뉴질랜드를 발견해서 뉴 제일란트로 이름을 붙였다고 함 )
그 후로 80년 후
1688년 영국의 탐험가인 윌리엄 댐피어가
호주 서쪽 뉴홀란드 (New holland) 에 상륙하지만
이때의 영국은 호주를 새로운 식민지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모두 호주라는 크고 넓은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식민지를 개간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호주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 었습니다.
유럽과 호주사이의 지리적인 격차가 너무 컸습니다
이렇게 호주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냥 역사속으로 사라질뻔지만 !!
그 이후,
1776년 7월4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되는데,
바로 미국의 독립 !
미국의 각 주가 독립선언을 발표하며 국민 주권의 원리를 보장하고자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난 독립전쟁 (또는 독립 혁명) 이 일어납니다.
참고로, 미국혁명에 대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출처: 티칭백과"에서 찾은 내용
미국 독립 혁명은 1776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난 독립 전쟁으로,
미국의 각 주(州)는 독립 선언을 발표하여 국민 주권의 원리를 보장하고자 하였다.
17세기에 많은 영국인들이 신앙의 자유와 경제적 기회를 찾아 북아메리카로 이주하였고, 이에 따라 18세기 전반에 북아메리카에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결성되었다. 영국은 식민지에 총독을 파견하였지만, 식민지들은 저마다 의회를 구성하여 광범위한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7년 전쟁(1756~1763)이 끝난 뒤에 영국은 어려운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 중상주의 정책을 강화하였고, 인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식민지인들이 크게 반발하며 ‘대표(代表) 없는 곳에 과세(課稅)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납세 거부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보스턴 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에 실린 차 상자를 바다로 던져 버리는 보스턴 차 사건(1773)을 구실로 영국 정부가 식민지를 더 압박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식민지 대표들은 이에 맞서 필라델피아에서 대륙회의를 개최하여 영국에 항의하였다. 그리고 1775년 4월 미국 보스턴 서쪽 교외 렉싱턴과 콩코드 부근에서 영국 군대와 식민지 민병대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며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민지 대표들은 제2회 대륙회의를 통해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1776년에 독립 선언을 발표하여 천부 인권, 주권 재민, 저항권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를 천명하였다.
식민지 군대는 요크타운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들은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연방 정부를 수립하였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워싱턴이 선출되었고, 이에 따라 최초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미국 독립 혁명은 영국의 부당한 식민 지배에 대항하였던 권리 수호 운동인 동시에 독립 전쟁이었다. 더불어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경우, 국민은 그 정부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TIP. 미국 혁명의 경우, 1775년 시작되어 1783년까지 지속되는데 대영제국(현재 영국)과 13개 식민지 간의 전쟁이었다. 1776년 미국이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독립을 인정받은 건 1783년에 이르러서였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아메리카: 영화 같은 이야기>는 '대체 역사' 장르를 차용해 역사를 볼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쯤 보시길 추천~~
이렇게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고
국제적으로 미국의 독립이 인정받아지자
영국은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
때마침 (미국이 독립하기 직전인 1770년)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제독이었던
제임스 쿡(James Cook or Captain Cook) 이
네덜란드가 발견한 뉴홀란드 (New holland)라 불리는 북쪽 지역이 아닌
지금의 호주의 동쪽 지역을 새로 발견하면서
시대적인 배경이 맞아 떨어져, 호주는 영국의 새로운 식민지가 됩니다.
제임스 쿡은 새로 발견한 지역을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 라고 명명하면서
본격적인 영국의 새로운 식민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제임스 쿡이 호주 동부를 발견하고,미국이 영국으로 독립한지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영국은 11척의 배들을 뉴 사우스 웨일즈로 보내는데요.
이 중 6척의 배에는 1,000여명의 죄수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영국의 함선들이 도착한 곳이
지금의 시드니 하버라 불리우는 곳으로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 위치해 있는 곳 입니다.
( 쿡 선장이 상륙한 장소에는 현재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하우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
또한, 영국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시작한 이날을 호주의 날 (Australia Day) 로 명명하며
지금까지도 중요한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1787년 처음 호주에 배를 보낸 이후 1848년까지 영국은 꾸준히 죄수들을 이송해 호주를 개척하였는데,
이 죄수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실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아닌, 경범죄자들이었습니다.
배가고파 빵한조각 훔친 사람들,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때 당시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기였습니다.
산업혁명은 세계를 근대화로 이끌었으나 그 시대를 산 일반사람들에겐 정말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18세기 들어 런던의 인구는 약 50년 간 무려 3배가 증가했고 공업도시인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이보다 더 했습니다.
이 도시 빈민들의 값싼 노동력 덕에 산업혁명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도시 범죄가 급증했습니다.
영국은 감자 몇 개와 빵 몇 조각을 훔쳐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래도 범죄가 줄어들지 않아 교도소가 미어터지게 되자 영국은 죄수들을 호주로 유배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배가고파, 가족을 위해 빵 한조각 훔칠 수 밖에 없었던 ....
굶어죽느냐 차라리 먹고 범죄자가 되느냐의 문제였던 것이었죠!
그런데 사실상 호주로 죄인들을 유배보내는 영국에서도 골치가 아팠습니다
왜냐면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죄수를 실어나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호주에서 형기를 마치거나, 사면을 받은 이들 중, 본국으로 돌려보내야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영국은 경범죄를 지은 형량이 끝난 죄수들을 호주에 정착시키기위해
여러가지 제안을 했고 영국으로 돌아가봤자 가난한 집구석에 얻어먹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호주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기 1850년대에 이르러 호주 대륙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부를 쫓아 자발적인 인구유입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점차 인구가 늘어가고 대륙이 탐험되며 지금의 호주 모습을 점차 갖게 되어,
뉴사우스 웨일즈, 빅토리아, 퀸즐랜드, 타즈매니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노던 테리토리라는 여섯개의 큰 식민지로 구성되어지며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였을 뿐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으려고도, 인정받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는 뉴질랜드와 더불어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영국군이 아닌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ANZAC)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면서 점차 독자적인 인식이 꽃을 피우게 됩니다.
특히 당시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하여 벌인 전투에서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을 비롯한 영국군 수뇌부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수많은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의 피해가 발생하며,
이때부터 호주 뉴질랜드의 독자적인 민족의식이 탄생하였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 갈리폴리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전투 중 하나로,
영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전투로도 기록되어 있음 )
1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인들은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많은 희생을 치뤄냈기에
전쟁 전보다 영국에 대해 강한 발언권을 얻게되며
1931년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헌장(Statute of Westminster 1931)이 발표되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발표되며 호주는 독립적인 입법권과 외교권을 가지게 되며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 이후 지금까지도 호주는 영연방국가로써 영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저도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블로그인데
아주 재밌게 호주의 역사를 적어놓으신 것 같아요
한 번 들어가보셔도 좋을 듯해요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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